누리호 2차 발사 성공의 순간 ©KARI
지난 6월 21일 우리나라의 독자기술로 만든 첫 우주발사체 ‘누리호’가 발사에 성공했습니다. 이를 통해 우리나라도 본격적인 우주 항해 시대를 맞이하게 되었는데요. 이어 8월에는 한국 최초 달 궤도선 ‘다누리’까지 발사에 성공하면서 '세계 7번째 달 탐사국'이라는 명예도 얻을 수 있었습니다.
이렇게 우주에 한걸음 더 다가가기까지 대한민국의 우주항공 프로젝트를 책임지는 한국항공우주연구원(이하 항우연) 연구원들의 끊임없는 노력과 도전이 있었는데요, LG사이언스파크 SP Tech Talk에서 항공우주연구원 이상률 원장을 만났습니다.
LG사이언스파크 SP Tech Talk - 이상률 원장
대한민국 우주 탐사의 선봉장, 이상률 원장
이상률 항우연 원장은 대한민국 우주개발 역사의 시작과 함께한 ‘우주 개발 1세대’이자 대한민국 우주 탐사의 선봉장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이상률 원장은 1990년 항우연에 합류하면서부터 항공기부터 우주발사체, 인공위성, 달 탐사까지 다양한 항공우주 분야를 경험했습니다. 우리나라의 주요 항공우주 업적이 대부분 그의 손을 거쳤다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특히 고성능 다목적 실용 위성인 아리랑 시리즈를 개발한 주역으로, 아리랑 3·5호의 경우 사업단장으로 개발과 발사 전 과정을 주도했고, 2019년에는 달탐사사업단을 맡아 2030년으로 예정된 달 착륙 탐사선 개발의 밑그림을 그리고 있는데요, 이렇게 괄목할 만한 성과를 만들어 낸 베테랑인 그에게도 처음 시작의 순간은 평생토록 잊히지 않습니다.
한국항공우주연구원 이상률 원장
“지금은 많은 국가들이 우주에 관심을 가지고 있어 ‘우주 시장’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우주 탐사가 활발히 진행되고 있는데요, 30년 전만 해도 우리나라에서는 우주 연구를 전담하는 주요 조직은 물론 예산도 거의 없던 상태였어요. 이런 상황에서 1989년 10월에 한국항공우주연구원이 처음 설립되었고 항우연 1호 엔지니어로 근무하게 되었습니다.
사실 돌이켜 생각해보면 이때가 가장 기억에 많이 남습니다. 개인적으로 가장 힘들었던 순간이었기 때문인데요, 선임이 없는 상태에서 누구도 가보지 않은 길을 걸어 간다는 것이 정말 막막했거든요. 이후 약 40년 가까이 우주항공에 대한 일을 해오면서 힘든 순간들을 맞이할 때마다 그때의 기억들을 떠올리며 ‘그래, 그때보다 더 힘들 수는 없지’ 하며 극복하곤 합니다. (웃음)”
누리호 성공의 비하인드 스토리
우리나라는 1990년대부터 과학로켓(KSR: Korea Sounding Rocket)을 본격적으로 개발해 오면서 독자적인 우주발사체 발사를 준비해왔습니다. 소형 위성발사체인 나로호의 경우 상단부에만 한국 기술이 적용되었다면, 이번에 발사에 성공한 누리호는 국내 기술만으로 개발한 한국형 발사체로 한국이 독자적인 우주 수송 능력을 확보했다는 것을 증명했음에 그 의미가 더욱더 특별합니다.
SP Tech Talk 자리를 꽉 채운 LG사이언스파크 임직원들의 모습
사실 누리호의 성공이 탄탄대로로만 이어졌던 것은 아닙니다. 나로호 1차 발사에 실패하고 2차 발사를 준비할 때, 한국만의 독자적인 기술로 우주에 도전하겠다는 새로운 목표가 생겼습니다. 그리고 바로 누리호 개발이 시작되었습니다. 항우연은 물론 주요 기업 30여곳, 그 외 참가 기업까지 포함하면 약 300여 개의 기업이 참여한 대규모 프로젝트였습니다.
우주발사체의 경우 군사 기술로 연결될 수 있어 구성품 구매 자체가 어려웠고, 개발 자체도 설계, 제작, 시험 등 모든 면에서 최고 난이도 기술의 집약체이자 국가 간 기술 이전도 불가능하기 때문에 온전히 독자적으로 개발해야 했습니다. 시험설비 구축부터 엔진 설계, 추진제 탱크 제작, 추진기관 제작 등 넘어야 할 관문이 끝없이 이어졌습니다.
"누리호의 발사까지, 연구에 무려 12년 3개월이라는 시간이 걸렸습니다."
“누리호의 심장이라고 할 수 있는 75톤의 엔진이 연소하는 시간은 1단에 128초, 2단에 143초라는 매우 짧은 시간이 소요됩니다. 이렇게 2분 남짓 한 시간을 잘 태우기 위해 무려 12년이라는 시간이 걸렸어요. 누리호의 성공까지는 말로 다 담지 못할 만큼 어려움이 많았습니다.”
누리호 엔진 연소시험 장면 ©KARI
특히 작년 10월 누리호 1차 발사가 성공으로 이어지지 못해 그동안의 노력이 물거품이 될 수도 있던 순간이었지만, 이상률 원장을 비롯한 항우연 연구원들은 낙담하지 않고 또다시 도전의 의지를 다졌습니다. 누리호가 해상으로 추락해 실물이 없는 상태였지만 텔레메트리(누리호 원격 수신정보) 자료를 끊임없이 분석하고 시뮬레이션해 실패의 요인을 발견했고 이를 극복하기 위해 계속해서 연구했습니다.
"끊임없는 도전이 누리호의 성공을 만들어 냈습니다."
“연구개발 과정에서 당면했던 문제들은 기존에 경험하지 못했던 일들이었습니다. 항상 새로운 문제가 발견되었죠, 그러나 이러한 상황에서 낙담만 할 수는 없었습니다. 끊임없는 시행착오만이 실패를 극복할 수 있는 방법이었습니다.
덕분에 짧은 기간 내에 실패의 원인을 구체적으로 규명해 낼 수 있었고 이렇게 만들어진 의미 있는 성과 덕분에 연구원들이 더욱더 자신감을 얻었습니다. 돌이켜보면 모두에게 힘든 시간이었지만 포기하지 않고 해내고야 말겠다는 연구진의 사명감과 책임감이 어려움을 이겨낼 수 있었던 원동력이었어요.
하지만 무엇보다 끊임없는 도전이 누리호의 성공을 만들어 낸 가장 중요한 요인이었다고 생각합니다. 덧붙이자면 국민들로부터 정말 많은 응원을 받았기 때문에 절반은 국민의 성원 덕분이라는 말을 꼭 전하고 싶습니다.”
이상률 원장이 전하는 도전에 대한 응원
누리호의 성공 이후에도 이상률 원장과 항우연의 도전은 끝나지 않았습니다. 독자적인 기술 개발을 더 고도화하기 위해 핵심이 될 산업체를 선정하고 육성할 계획이며 2031년까지 달 착륙선을 우리 발사체로 발사하는 것을 새로운 목표로 삼고 있습니다.
이처럼 끊임없는 도전정신을 몸소 실천해온 이상률 원장은 SP Tech Talk 강연을 마무리하며, 더 나은 미래를 위해 혁신을 만들어가는 LG사이언스파크 연구원들의 담대한 도전을 응원했습니다.
"LG사이언스파크 임직원 여러분들의 담대한 도전을 응원합니다."
“대한민국은 36년 만에 괄목할 만한 우주개발을 진행해왔다고 볼 수 있습니다, 1호 엔지니어로 시작해서 지금까지, 40년에 가까운 적지 않은 시간이었는데요, 저뿐만 아니라 같은 목표를 바라보는 연구원들의 도전이 멈추지 않았기에 이런 값진 결과가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뒤늦게 출발했음에도 우리나라가 자동차, 반도체, 조선 분야에서 세계적인 경쟁력을 확보한 것처럼 우주 분야에서도 우리 특유의 성실함과 영리함, 도전정신을 발휘한다면 훨씬 더 좋은 성과와 성공이 기다리고 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우주 분야뿐만 아니라 여기 LG사이언스파크에서 새로운 영역을 개척하기 위해, 이전에 없었던 혁신을 만들어 가는 연구원분들 모두 상상을 하고 자기의 꿈을 꾸면서 가능한 멀리 내다보고 담대한 도전을 했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