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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P TECH COLUMN] 적정기술은 어떻게 세상을 이롭게 하나? 사례로 보는 적정기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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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례로 보는 적정기술
사례로 보는 적정기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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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정기술 #적정기술연구회 #LG

 

우리는 매일 뉴스를 통해 세계 곳곳 어려운 이웃들의 소식을 듣습니다. 가난으로 교육받지 못하는 아이들, 상수도 시설이 없어 고통받는 사람들. 똑같은 사람으로서 그들의 상황에 공감하는 분도 많은데요. 이런 개발도상국 주민들의 삶을 바꾸려는 고민에서 출발한 기술이 바로 ‘적정기술(appropriate tech)입니다.

하이테크(High Tech)도 로우 테크(Low Tech)도 아닌 현재 그들의 상황에 맞춘 적정한(appropriate) 수준의 기술이란 뜻이죠. 보통 기업들이 연구하고 개발하는 기술 혹은 제품 상당수는 선진국 시장을 타깃으로 합니다. 선진국 소비자에게 맞춰진 첨단 기술은 개발도상국처럼 인프라 자체가 부족한 곳에서는 무용지물이 되곤 하죠.

예컨대 인공지능 기술이 들어간 첨단 청소기가 있더라도 집에 전기가 없다면 애물단지가 되는 것 처럼 말입니다. 이번 칼럼에선 사례를 통해 적정기술이 어떻게 세계 이웃들의 삶을 바꾸는지 살펴보겠습니다.
 

물 긷는 노동에 시달리는 주민들을 위해 만든 이동형 물통 히포 롤러(hipporoller) (출처 : 히포 롤러 공식 홈페이지)

교육과 전력난, 두 마리 토끼 잡는 학교 속 충전소

처음 소개할 적정기술은 아프리카 소외 지역의 ‘솔라셀(태양광 전지)’입니다. “전기도 부족한 나라에 친환경 에너지라니?” 이렇게 생각하실 수 있지만, 사실 아프리카에서 태양광은 친환경이 아닌 실용적인 대안입니다. 

아프리카 소외 지역엔 전력망을 제대로 갖추지 않은 곳이 많은데요, 전기 부족으로 일상 불편은 물론이거니와, 이들이 학습하고 도전할 수 있는 가능성까지 없애고 있죠. 그렇다면 이러한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수 있을까요? 우리가 아프리카 하면 떠오르는 이미지는 내리쬐는 햇볕, 바로 태양광을 이용한 솔라셀(solar cell)이 해결책이 될 수 있습니다.
 

배터리를 가져와 학교에서 충전하는 적정기술 ‘솔라카우’ (출처 : 솔라카우 공식 유튜브)

유명한 솔라셀 사업으로 ‘솔라카우(Solar Cow)’가 있습니다. 미국 타임지 최고의 발명품 100 선정과 CES 혁신상을 받은 이 제품은 한국의 스타트업 요크가 개발했습니다. 소 모양의 기구물에 솔라셀과 자체 제작한 핸드폰 배터리를 여러 개 연결하여 충전하는 컨셉인데요. 소에서 젖을 짜듯, 배터리를 충전하는 형태죠.
 
케냐의 소외 지역은 전력 부족으로 전등을 켜거나, 각종 전자 기기를 사용하는 데 어려움을 겪어왔습니다. 은행 계좌를 만들기 어려운 케냐 특성상 주민 상당수가 모바일송금시스템(사파리콤의 엠페사 서비스)을 사용하고 있는데요. 전력 공급이 어렵다 보니 핸드폰 충전소까지 한참을 걸어가 비싼 비용까지 지불하며 충전해왔습니다. 하지만 솔라카우로 인해 무료로 쉽게 충전할 수 있게 된 것이죠.
 

 

솔라셀을 이용한 충전 장치 솔라카우는 특이하게도 학교에 설치되었습니다. 학교 다니는 아이들에게 충전 배터리를 할당해주었죠. 여기엔 특별한 이유가 있습니다. 

케냐에선 경제적인 이유로 아이들을 학교에 보내지 않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하지만 학교에 가지 않으면 아이들과 공동체의 미래가 어두워지죠. 솔라카우가 설치되고 나서 아이들은 학교 수업을 듣는 동안 배터리를 충전했고, 수업이 끝나면 충전된 배터리를 집으로 가져와 핸드폰 충전 등 다양한 곳에 사용했습니다. 

솔라셀 자체는 새로운 기술이 아닙니다. 하지만 현지의 상황을 세심하게 고려한 솔라카우의 기획은 개발도상국 주민들의 집안 전등과 아이들의 미래 모두를 밝히고 있습니다.

적정기술, 현지 사정 고려한 세심한 기획이 중요해

적정기술에 성공사례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적정기술을 소개할 때 대표적으로 소개되는 사례인 라이프스트로우(LifeStraw)는 빨대 모양의 막대기에 정수 필터가 내장된 제품입니다. 언제든 들고 다니며 손쉽게 깨끗한 물을 마실 수 있는 제품이죠. 처음 개발되었을 땐 획기적이라는 칭찬을 받았지만 성공리에 확산되지 못했습니다. 아프리카 소외 지역 주민들의 부족한 경제력을 간과했던 것입니다.

정수 필터가 붙은 휴대용 정수기, 라이프스트로우 (출처 : 라이프스트로우 홈페이지)

많은 정수기가 그렇듯, 라이프스트로우 역시 1년에 한 번 정수 필터를 교체해야 하는데요. 대당 가격은 20달러 정도로, 일반적인 정수 필터보다 저렴하지만, 아프리카 소외 지역 주민들은 그 비용조차 지불하기 힘들었습니다. 그래서 기부로 보내진 많은 제품이 몇 년 후 곳곳에 버려져 있기도 했습니다.

이후 여러 자선 단체와 비영리 기관, 기업 등이 현지 사정을 고려한 친환경 정수기를 개발하였습니다. 그중에는 과테말라의 과학자 페르난도 마자레이고스가 진흙을 이겨 만든 세라믹 정수기 ‘세라믹 워터 필터’가 있는데요. 진흙에 왕겨를 섞어 고온을 구운 이 도자기엔 아주 작은 구멍이 있어, 물은 통과시키지만 박테리아나 세균은 걸러내죠. 전기도 필요 없고, 저렴한 비용으로 비교적 쉽게 만들 수 있어 과테말라와 캄보디아를 포함한 여러 나라 수십만 명의 주민들이 실생활에서 사용 중입니다. 

왕겨를 넣고 구운 도자기로 만든 물 정수기, 세라믹 워터 필터 (출처 : Low-tech Lab)

‘저가 컴퓨터’가 만들어 가는 아이들의 미래

적정기술에는 전기나 물 이외에도 교육 분야를 다루는 기술도 있습니다. 흔히 가난도 대물림된다고 하죠. 선진국에서 첨단 기술이 판을 치는 지금, 개발도상국과 빈민국에서는 IT 교육의 혜택을 누리기 힘듭니다. 교육 시설과 첨단 장비에 대한 인프라가 부족하기 때문이죠. 이러한 상황에서 저가형 컴퓨터의 보급은 그들에게 IT 교육이라는 커다란 기회가 되기도 합니다.
 
영국 라즈베리파이 재단에서 교육용으로 만든 라즈베리파이(Raspberry Pi)는 초기 가격이 고작 $35 정도로 개발 보드 시장에 충격을 주었습니다. 기존 보드에서 비용이 많이 드는 eMMC(Embeded Multimediacard) 등 필수적이지 않은 주변 장치들을 제외함으로써 속도는 좀 느리지만 가격을 획기적으로 낮춘 제품을 만들 수 있었죠. 개발도상국 교육 기관들은 이 컴퓨팅 보드를 구입해 저렴한 교육용 컴퓨터로 만들었고, 아이들도 교육의 혜택을 누릴 수 있게 되었죠.
 

개발도상국 아이들의 교육용으로 만들어진 초저가형 컴퓨팅 보드 ‘라즈베리파이’ (출처 : 라즈베리파이 홈페이지)

기술로 만들어 가는 선량한 세상, 적정기술

요즘엔 대기업들 역시 적정기술에 관심이 많습니다. 제가 몸담고 있는 LG전자에도 10년 이상 활발하게 활동 중인 기술 커뮤니티 ‘친환경 적정기술 연구회’가 있습니다. 

친환경 적정기술 연구회의 시작은 한 세미나였습니다. 친환경 신사업 검토를 위해 2011년 포항공대 장수영 교수님을 초빙하여 ‘LG가 할 수 있는 적정기술’이란 주제로 세미나를 진행했는데요. 그 세미나를 통해 적정기술의 필요성에 공감한 LG 구성원들이 모여 ‘친환경 적정기술 연구회’가 탄생했습니다.

그때부터 지금까지 연구원, 디자이너, 기획자, UX 전문가 등 여러 분야의 LG 구성원뿐 아니라 사업가, NGO, 대학생 등 여러 외부 인사들이 모여 기술과 디자인 재능을 나눌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해오고 있습니다.

태양광을 이용한 휴대폰 충전시스템 ‘솔라멀티차저’를 개발해 에티오피아에 있는 LG 아프리카 희망 마을에 전달했고, 친환경 정수기 해외 특허 출원 및 각종 메이커스페어 대회에도 참가하기도 했습니다. 지금도 매월 초청 세미나를 진행하며 적정기술 사업과 관련된 다양한 아이디어들을 나누고 있습니다.

최근에는 JIT 연구소의  손문탁 박사님을 모시고 직접 만드신 분석화학키트에 대해 논의했습니다. 이 분석화학키트는 화학물질의 성분을 AI 기술을 사용하여 분석하는 장비로, 학생들에게 AI 원리를 쉽게 설명하기 위해 만들어졌죠. 시중에 판매되는 키트 대비 매우 저렴한 가격으로 제작되어 교육 환경이 열악한 탄자니아의 학생들에게 앞길을 비춰주는 등불이라고 호평을 받기도 했습니다
 

친환경 적정기술 연구회에서 만든 솔라 멀티 차저 (출처 : LG 전자)

세상엔 우리가 가진 재능으로 이웃을 도울 방법이 많습니다. 특히 기술과 관심과 열정이 있어 향후 기술 관련 커리어를 꿈꾸는 분들이라면, 적정기술에도 관심을 가져보면 어떨까요. 자신의 전문성을 살리며 동시에 세상을 이롭게 하는 즐거움까지 함께 발견하는 기회에 모두가 도전해 보길 바랍니다.